澄觀 2017. 9. 20. 17:41

Bonny’s Pizza Pub


오랫만의 이태원 방문이다, 개인적으로 이태원에는 좋아하는 집들이 많다. 호두당근타르트가 맛있는 ‘러블리 숑숑’, 보르쉬를 먹고 싶을 때면 가는 ‘뜨로이까’, 그리고 수 많은 터키 식당들. 오늘 방문한 곳은 피자집이다.


이태원은 기본적으로 미군부대 옆애 조성된 탓에, 미국스러운 음식은 이태원에서도 주류다, 수많은 피자집들이 있고, 수 많은 햄버거 가게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오늘은 Bonny’s Pizza Pub을 방문하였다. 시간은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 사이, 애매하고 나른한 3시.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였다면 아마 티 타임을 시작했을 시간이었다. 가게 안에는 애매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손님들이 식사중이었다. 대부분 두명이서 온 손님들은 가운데 레귤러 사이즈 피자 하나를 두고. 각자의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이 곳은 펍을 겸하고 있어서, 많은 종류의 맥주와 주류들, 그리고 생맥주가 있었다. 역시 피자엔 맥주다. 필스너 우르켈 생맥주를 우선 한 잔 시켰다.


피자는 다양한 종류가 있었고, 심지어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피자 메뉴도 두 개 있었다. 혹시 채식주의자와 함께 한다면, Half and Half로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 피자가게에 대한 지론이 있다면, 치즈피자를 먹어보아야 피자 맛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빵집에서는 바게뜨와 크로와상을 먹어봐야 하고, 중국집에서는 짜장면을 시켜먹어보아야 하듯, 피자가게에서는 역시 치즈피자를 먹어보아야 한다. 피자 소스가 맛있는지, 치즈가 좋은지, 그리고 도우는 적절하게 굽혔는지. 모든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고, 다른 것으로 가릴 방법이 없으니, 가장 좋다.


또 한가지 내 눈길을 끄는 것은 The Big Eion. "For those who don't count calories"라는 문구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칼로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맛은 보장하겠다는 뜻이 아닐까? 토마토, 양파, 블랙 올리브와 소고기가 들어가는 피자라고 한다. 뭔가 평범하지만,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재료도 안보고 그 문구 하나에 꽂혀서 주문했다. 


대화가 잠시 중단되고, 언제쯤 나올까? 라는 생각이 들 무렵, 피자가 나왔다. 레귤러 사이즈라는 것이 일반적인 13인치피자인지라, 먹고 나서도 배가 고프면 어쩌나? 바로 옆에 있는 수제버거집에 들러서 버거를 포장해서 가면 될까? 라는 생각을 했으나, 기우였음이 곧 드러났다. 치즈피자는 팬 피자 위에 도우만큼이나 두꺼운 치즈가 올라와 있었고, The Big Eion은 그런 피자 위에 토핑이 더 들어간 피자였다. 역시. 미국은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피자를 한 조각 집어 올리는 순간, 옆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 바로 옆 조각에 있는 치즈 토핑이 들썩이면서, 안에 덜 녹은 치즈가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치즈 처럼 생긴 조각이 남아있었다. 덜 녹은 것일까? 설마, 속이 차디찬 피자를 먹게 되는건가? 불안감이 엄습했다. 겉은 뜨겁고 속은 차가운 피자만큼 끔찍한 것이 있다면, 아마 미지근한 맥주정도가 아닐까? 다행히, 한 입 베어물었을 때,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아마 여러 종류의 치즈를 섞어서 맛을 내다 보니, 잘 녹지 않는 종류의 치즈도 섞여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기본을 망각한 태도라고 볼 여지도 충분하지만, 우선 맛에서 방해가 되지 않아서 넘어갔다.


치즈피자는 훌륭하다. 어떻게 하면 치즈를 많이 넣으면서 맛있게, 거북하지 않게 만드는가에 있어서는 확실한 노하우가 보였다. 치즈는 잘 늘어났고, 도우는 충실했다. 토마토 소스는 조화로웠다. 치즈피자의 훌륭한 교과서다. 요 근래에 4가지 치즈를 넣었다느니 하는 것들은 기만일 뿐이다. 치즈피자에 어울리는 것은 안타깝지만 체다치즈가 아니다. 체다는 햄버거 사이에 들어가 있을 때 훌륭한 치즈인 것이다. 치즈피자로 입맛을 돋우었으니, The Big Eion을 맛볼 차례다. 의외로, 비주얼은 그다지 칼로리가 넘쳐날 것 같지 않다. 토마토 덕분인지, 상당히 건강한 피자처럼 보인다. P사의 All Meat 같은 파괴적인 비주얼을 상상했던 나로서는 온순하기 그지 없어보이는 이 메뉴가 웰빙메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맛은? 훌륭하다. 웰빙 메뉴도 맛있을 수 있다는, 편견을 깨는 맛이다. 토마토 페이스트와 생 토마토의 조합이, 싫어할 수 없게 만들고, 고기와 양파가 씹는 맛을 더해준다. 여기에 타바스코 소스를 살짝 뿌리면? 금상첨화 되겠다.


사실, 피자는 같은 맛을 두조각 넘게 먹는 순간 맛이 질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가끔 자르지 않고 먹는 날도 있다.) 개인적으로 손님이 끊임없이 오는 가게라면, 조각피자의 비중을 좀 더 키워주는 것은 어떨까 싶다. 대부분 손님들은 둘씩 오는 것 같았고, 두명에게 한 판은, 일인당 네조각을 먹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정도로 맛이있는 집이라면, 사실 여러 피자를 맛보고 싶기도 하다. 물론, 금방 구운 피자가 가장 맛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특히 치즈를 흘러내릴 정도로 많이 주는 집이라면 더욱 금방 만든 것을 먹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고객으로서 좀 더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수 없는 노릇이다. 


이 곳은 언젠가 다시 방문해서 다른 메뉴들도 꼭 먹어보고 싶다. 다음에 나를 보거든, 꼭 '이태원에 피자먹으러가자'고 말해달라.


2017.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