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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식향
    식도락/맛집기행 ☆☆☆☆ 2024. 2. 14. 16:06

    [천년식향] 고작 백년을 살고자 버둥거리는 중생으로서는 천년을 가는 향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지만, 그 서원만큼은 함께 마음에 고이 간직하고 싶다. 맛있는 '비건식당'이 아니라, '맛있는 식당'을 지향하는, 비건 식당이지만 비건식당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밝히는 천년식향은 도발적인 메뉴들과 이야기가 함께하는 식당이다.  

      가장 유명한 메뉴는 당근을 싫어하던 손님이 먹어보고 어지간한 Sex 보다 낫다고 평해 Better than Sex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당근 요리. 그리고 Sex and Steak 라는 이름이 붙은 콩고기, 유부 꼬치구이. 두 요리는 이름으로 보나, 성격으로보나 천년식향의 간판 격인 메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Better than Sex는 자꾸만 손이가는 당근요리인데, 눈을 감고 먹으면 저멀리서 다가오는 은은한 당근의 향기를 빼면 당근이라는 것을 눈치채기 어려울 것 같은 요리였다. 저온에 오랜시간 조리해서 심은 거의 사라졌고, 당근의 식감도 으레 생각하는 식감에서 상당히 벗어났다. 흥미로운 요리였고 추천할만한 독특한 비건 요리였지만, '맛있는 요리'였는지 묻는다면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당근을 오랜시간 익혀서 만드는 요리인 탓에 한 점 한 점의 크기가 비교적 작았고, 이 때문에 입에 꽉차는 식감이나 풍부한 식감을 원한다면 조금 아쉬울 수 있을 것 같다. 간이 약한 요리가 아닌 만큼, 좀 더 부피감 있는 식재료와 함께 어우러지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Sex and Steak 라는 이름이 붙은 요리는 콩고기와 유부 등을 소스와 함께 구운 꼬치요리 형태로 나왔는데, Better than Sex와 마찬가지로 양이 조금 아쉬운 편이었다. 처음 먹었을 때는 짭쪼름한 소스 맛에 매료되었는데, 흔히들 맛있는 대체육을 표현하는 '고기가 아니라니 믿기지 않아요' 라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고기를 먹지 않아도 세상에 맛있는 것이 많아요! 라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굳이 고기에 비유하자면 콩고기는 마리네이드가 많이 된 고기(근육의 질긴 결합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고기)의 느낌에 가까웠다. 유부는 흔히들 맛볼수 있는 유부의 맛에 가까웠고.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따뜻하게 제공되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게 식었다는 점인데,  식은뒤에는 고기에 더해진 양념의 맛이 훨씬 강해진 탓에 처음에 의도한 맛과는 조금 다른 맛이 나온 것 같다. 이후에는 보온이 되는 형태의 그릇에 제공되면 더 즐거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메뉴에 샐러드가 포함된 점은 쌈처럼 먹기에도 좋고, 스테이크의 질감과 이질적인 샐러드의 질감이 함께 느껴져 좋았다.

       마지막으로 먹은 것은 트러플 머쉬룸 사워도우 피자 였는데, 네 조각으로 잘랐을 때 딱 1인분 정도의 앙증맞은 사이즈의 피자였다. 크리미한 베이스에 버섯의 향이 가득한 피자는 4분의 1조각씩 들고 한 입에 베어물어 먹었는데, 단언컨대 3년간 먹은 피자 가운데 제일이었다. 다음에 천년식향을 피자가게라고 소개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아주 훌륭하고 맛있었는데, 도우는 쫄깃하고 토핑은 풍부했으며, 한데 어루러져서 완벽한 음식이 되었다. 피자가 완벽한 음식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은 아마도 천년식향에서 피자를 먹어본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사진을 예쁘게 찍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정신없이 먹고나니 한 조각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피자를 주문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꼭 팁을 하나 주고 싶다. 나오면 즉시 사람수에 맞게 잘라서 1분내에 드시라고. 갓 나온 피자의 맛과 10분이 지난뒤의 맛은 한국의 여름과 겨울 만큼이나 달랐다.

     

      천년식향은 맛있는 식당이다. 방문하는 사람 가운데 대부분이 비건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도 천년식향의 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무실과 집에서 가까워서 더욱 반가운 식당 천년식향이다. 

     

    202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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